심훈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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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선생 (1901~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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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동작구 흑석동 심훈생가터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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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은 1901년 경기도 시흥군 신북면(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심대섭이며, 심훈이란 이름은 필명으로 1926년 영화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할 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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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이 어머님께 올린 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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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당시 심훈 재판 판결문

1915년 경성고등보통학교(현 서울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해 박열, 박헌영, 윤극영들과 함께 수학하였으며, 1919년 3·1운동에 참여해 덕수궁 앞 해명여관에서 체포되어 재판에까지 회부되었는데 이를 통해 주모자급으로 짐작할 수 있으며 구속되어 수개월을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게 된다. 특히, 서대문 형무소에서 어머님께 보낸 편지인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데 당시 서대문 형무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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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먼동이 틀 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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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통곡 속에서』

석방된 이듬해인 1920년 극문학 공부를 위해 중국으로 떠나는데 북경, 상해, 남경 등에서 단재 신채호, 우당 이회영, 성제 이시영, 석오 이동녕 등 여러 독립지사와 수 개월간 열정적으로 교류하며, 대한의 독립운동을 부르짖기도 하였다. 


1921년 중국 항주시의 지강대학에서 극문과를 수학하고 1923년 귀국한 그는 연극, 영화, 소설집 필 등 문예활동에 몰두하였다. 특히 영화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1926년 영화 『장한몽』의 후반부 남주인공(이수일 역)으로 출연하였고, 1927년에는 영화 『먼동이 틀 때』를 각색, 감독으로 제작하여 단성사에서 개봉하였다. 1926년에는 순종(융희황제)의 국장이 준비되고 있는 돈화문 앞에서 시 『통곡 속에서』를 지어 6·10 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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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 부곡리 『필경사』(충청남도 기념물 제107호)

1932년 당진으로 내려온 심훈은 소설 『직녀성』의 원고료 일부로 집을 직접 설계하여 지어 이름을 『필경사』(붓으로 농사를 짓는다)로 하였다. 필경사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107호로 현재도 남아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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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영과 공동경작회 회원들

1935년 상록수를 영화화 하기 위해 모인 심훈과 영화관계자들

1935년 동아일보가 브나로드 운동을 진행하고, 창간 15주년을 맞아 농촌과 어촌을 배경으로 하는 장편 소설을 공모하였는데, 심훈은 당진 부곡리의 공동경작회 활동을 소재로 삼아 『상록수』를 공모하였고 당선되어 연재하였다. 『상록수』는 일제강점기 농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 내며 농총게몽운동 정신을 이끌었으며 많은 사람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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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시 『그 날이 오면』

심훈은 상록수를 영화화하고자 했지만, 일제의 방해로 좌절되었고 단행본 출간을 목표로 집필에 몰두하던 중 1936년 장티푸스로 인해 3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심훈이 1930년 3월 1일에 쓴 그의 시“그날이 오면”을 읽다 보면 그가 얼마나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고 이를 위해 분투하였는지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다.